나의 글

출근 길 전철에서

최재곤(집시) 2011. 4. 24. 16:58

 

출근 길 전철에서

 

요즘 날씨, 아침엔 싸늘하고 낮에는 더우니 옷을 맞춰 입는데도 신경이 쓰인다.

어제는 비가 제법 내려 다행히 이런저런 밀린 집안 일들을 하는데 많은 도움이 된 하루였다.

 

오늘 아침에 출근하려고 장롱 속에 빼곡히 잠자고 있는 옷들 이것저것 걸쳐보아도 잘 맞지 않는다. 근간에 들어 활동하기에 편한 등산복을 즐겨 입다보니 다른 옷은 장롱의 공간만 비좁게 한다. 그런 대로 괜찮은 백화점 메이커들이나 다들 해묵은 지 오래다.

 

여는 때와 다름없이 동서울에서 전철을 탔다.

주말이라 손님이 적어 간간이 서있는 사람이 있을 뿐 전철 안은 한가한 편이었다.

바로 내 옆에 아가씨가 그 옆에는 애인인 듯하다. 그들은 서로 연인 같았다.

나이는 아마 28세에서 30세 정도, 여자는 그렇다 치고 같이 있는 그 녀석은 얼마간이나 세탁을 하지 않았는지 꾀죄죄한 흰 운동화에 복사뼈 아래로 올라오는 역시 때가 꾀죄죄한 목이 짧으면서 깃이 분홍색인 흰 양말에 바지는 좌우측에 흰색의 줄이 세 개나 있고 앞줄을 재봉질 해놓은 바탕이 검은 색 추리닝을 입었고 상의는 바싹 붙는 검은 잠바 인상은 약간 긴 형태에 아마 1cm 정도의 정리되지 않은 콧수염, 코 하나는 잘 생겼으나 나머지는 밥맛 떨어지는 인상이다.

 

두 사람은 나란히 앉아 서로 손을 만지작거리며 열심히 스킨십을 개을리 하지 않는다. 그넘이 보기에는 그래도 어딘가 이 아가씨를 끄는 뭔가의 힘은 있는 모양이다. 말할 때는 입술이 닿을 듯 말듯 요것들이 오늘도 나의 속을 뒤집어 놓는다. 요걸 보고 참고 있자니 속이 뒤틀린다. 일침을 놓을까 말까하다 선릉역에 다다르니 앞좌석의 손님들이 우르르 내린다. 내 옆의 젊은이들도 내렸다.

 

주변의 다른 좌석은 모두 5명 이상 앉았는데 유독 내 정면의 좌석에는 중앙에 어떤 여인 혼자 앉았다. 왠지 쓸쓸해 보였다. 그녀는 55세 정도로 보였고 희끗희끗하게 처리한 청바지, 목 부분의 깃이 바람 불면 팔락팔락 날릴 것 같은 검은 블라우스에 몸에 딱 붙는 검은 마이, 목에는 흰색에 역시 검은 땡땡이 무늬의 스카프를 목에 그럴싸하게 감았다. 살결은 희고 계란형의 얼굴에 약간 긴 머리, 내내 눈을 감고 있는데 자는지 조는지 자세는 흐트러지지 않는다. 전철은 사당역에 다다랐고 나는 갈아타기 위해 내렸다.

 

4호선으로 갈아탔는데 거기는 손님이 좀 많은 편이었으나 다행히 금정역에서 자리가 생겨 앉았다. 내가 앉은 맞은편에 28세쯤으로 보이는 여성이 스마트폰과 시름 하고 있었다. 화면에다 양손의 엄지로 뭔가를 열심히 두드리고 있다. 나머지 양손의 손가락들도 분주하다. 양손의 엄지가 톡~~ 탁, 톡~탁, 톡~탁, 톡~탁, 톡탁톡탁톡탁탁톡탁톡탁탁톡탁톡탁탁톡탁톡탁탁톡탁톡탁탁톡탁톡탁탁톡탁톡탁탁톡탁톡탁다다다다다다다다다다다다다다다다다다다다다다다다다다다다다다다다다다다다다다다다다다다다다 그러다 이제 중지, 약지, 소지 까지 심지어 손목까지 요동을 친다.

 

아가씨, 보기에는 예뻤는데 그 순간 앉은 자세도 흐트러진다. 다리의 양 무릎은 벌어지고 속 팬티까지 보인다. 난 속으로 ‘미친년’ 그러나 손의 움직임은 더 현란해진다. 보기가 민망해진다. 나는 보다 못해 마침 내 옆의 아주머니도 그녀를 보고 있기에 아주머니에게 “저 아가씨 보기에 좀 그러내요.” 하면서 턱과 눈으로 가리켰다. 이미 그녀도 유심히 보았던 터인데도 아무 말을 건네지 않는다.

 

그사이 전철은 나의 목적지인 공단역에 도착했고 나는 그런 그녀를 뒤로하고 그냥 내렸다. 날은 비 온 뒤라 아침 공기도 맑고 시원하고 공단역의 주변 벚꽃도 한창인데 왠지 기분은 찜찜한 아침이었다.

 

2011.4.2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