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글

인연과 사랑

최재곤(집시) 2016. 9. 4. 13:57

인연과 사랑


6-1.

2016년 여름은 여느 때의 여름보다 덥다. 전력수요가 최고치를 기록했다고 한다.

8월 어느 날 골목을 운전하는 차의 외기온도는 38.5도를 가리키고 있다.

지난 11일 대구와 하양은 39.5도 까지 올랐다고 한다.


아침 일찍 눈이 떠졌다.

비가 내리고 난 뒤라 여느 때 보다 시원한 편이다.

주섬주섬 간편 산행차림으로 동네 뒷산(아차산)으로 오른다.

금년 들어 운동을 게을리 한 결과로 몸무게가 자꾸 늘어나고 몸이 무거워지고

둔해지는 감을 느꼈기 때문에 이래서는 안되겠다는 생각이 들어

더운 날씨에도 집에 있을 때는 아침, 저녁으로 산행하기로 결심했다.

하기사 산행도 산행 나름이겠지만 아차산은 둘래길 걷는 수준이다.


아차산 입구 매점 곁에는 매일 새벽부터 70~80 정도 되는 노인들 데여섯명이

테이블 위에 막걸리를 올려놓고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눈다.

거기로부터 동으로 30여 미터 떨어진 농구장에선 음악을 틀어놓고 새벽운동을 하고 있다.

그 음악은 온 계곡을 잠에서 깨운다.

아랫배와 옆구리의 군살을 제거하려고 아랫배에 힘을 넣고 보폭을 길게 하며

허리를 많이 돌려 장의 활동을 돋운다.


통상 집에서 마을 골목 오르막길을 1000보 정도를 걸으면 아차산 입구에 다다른다. 

이때쯤이면 온몸이 벌써 땀으로 젖고 아랫배에 소식이 온다.

화장실에 들러 잠시 볼일을 본다.

싸우나가 따로 없다.

바람의 유동이 정지된 좁은 화장실 공간이 곧 땀을 빼는 곳이다.

변기에 한참을 앉아있으면 특히 머리에서 흐르는 땀은 주전자로 쪼르르 내리 붇는 것 같다.

화장실을 나서면 몸은 더 가벼워지고 중간에 돌발 상황을 맞을 걱정은 없어진다.

몸이 더 가벼워지는 것을 느끼며 기분마저 상쾌해진다.


산을 오르는 사람 중에는 약수터에 물 길러 오는 사람도 있고

한쪽 수족을 제대로 못 쓰는 이도 있고 개를 몰고 오는 이들도 많다.

아침 식사인지 간식인지 준비해 와서 데크 난간에 도시락을 펴놓고 먹는 이도 있다.

음악을 틀고 다니는 사람, 외계인 같이 얼굴에 뭘 쓰고 다니는 사람,

연인과 같이 와서 이 더운 날씨에도 손을 꼭 잡고 가는 사람

심지어 어깨를 끼고 걷는 이도 있다.

사랑의 힘이 이렇게 더운 날씨도 아랑곳하지않게 물리친다.

참 대단하고 가지 각색이다.


잘 만들어진 데크 중간 중간 난간 또는 의자에 삼삼오오 앉아 쉬며 수다 떠는 할머니들

그 앞에 약간 구부린 자세로 양팔을 늘어트리고 좌우로 흔드는 골프 스윙하는

‘나 이래도 왕년에 한가락 했소.’ 하는 사람,

그 중에 나는 머리에 붉은 땀수건 질끈 둘러매고 쏜살같이 걷는가 하면

중간중간에 계단을 만나면 날아 오르내릴 듯 요란하게 계단을 오르내린다.

이렇게 걷는 중에도 우리나라 좋은 나라라는 걸 세삼 느낀다.


길은 곳곳에 포장되거나 돌계단 또는 나무토막계단으로

또는 데크로 시설되어있는가 하면 중간 중간에 벤치도 많이 만들어져있고

전망이 좋은 곳에 둘이 앉으면 딱맞는 그네 의자도 있다.

주인이 없는 앉으면 주인인 의자.

그 의자는 얼마 전 우연케도 나에게 한 인연을 맺게 해준 의자다.

그네의자는 해돋이 광장 곁에 데크 전망대에 두곳에 설치되어있다.


어느 날 새벽 꼬부랑 할머니를 본 날이다.

그네의자에는 이미 먼저 온 이가 앉아 흔들흔들 쉬고 있었다.

나는 그와 눈이 마주치자 흔히 하는 "안녕하세요?" 라고 인사를 건넸다.

그는 그냥 짧게 "네"라고 대답했다.

이내 나는 눈을 돌리며 그네의자 앞 데크 난간 대에 기대어 서울 시내를 바라보고 있었다.

“자주 올라오십니까?”하고 그네에 앉은 이가 뒤에서 말을 걸어왔다.

나는 바라보던 시내 전경을 그대로 바라보며 “네 최근에는 자주 올라옵니다.”

“가까이 사시는가 봐요.”

“네 바로 산 아래 광나루 역 나와서 올라오는 중간쯤이지요.”

나는 대답하면서 반쪽이 비어있는 그네의자쪽으로 다가가자 그가 흔들리는 그네를 멈추고

"이리 앉으세요." 하면서 한쪽으로 비켜 앉으면서 반쪽을 비워 주었다.

우리는 그렇게 앉아 또 그네를 흔들었다.


"좀 전에 하신 말씀 중에 최근에 자주 올라 오신다는데 그럼 그 전에는……."하고 말끝을 흐린다.

"네 제가 하는 일이 장기 출장이 많아서 최근에 출장을 마치고 귀가하다 보니

그리고 제가 이 아래에 이사 온지가 이제 일 년이 대가거든요"

둘은 이런저런 가족이야기 까지 나누며 명함을 주고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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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2.

아차산을 오르는 골목에는 가정집을 개조한 식당과 카페들이 있고

산 초입에 이르면 구청에서 신청을 받아 분배한 폭이 1.5m 길이 3.5m 정도 되는

주말 농장 100여개가 있다.

토막마다 주인이름을 푯말에 써서 꽂아 놓았는데

이상하게도 이름의 성비가 남녀 1:3로 여성이 월등히 많은 것으로 보인다.

왜 그럴까?

봄에는 상추, 가지, 고추, 쑥갓, 방울도마토, 당근 등을 심더니

최근들어 거의 수확을 하고 가을 작물을 심기위해 새로 두덩을 만들어 놓은 데가 많다.


엄마와 아이, 아빠와 아이, 젊은 부부와 아이들 “엄마 개울에 물이....”

“그래 지난 더울 때는 말랐었는데 ...”

아이들이 보는 개울에 졸졸 흐르는 물이 신기해 보이기도 하는 모양이다.

산을 오르내리면서 동행자 중에 내가 제일 부러워하는 것이 있다.

다 큰 딸, 성인이 된 딸과 같이 오는 아빠가 제일 부럽다.


고려정이란 정자 아래는 주변이 전부 바위다.

한 젊은 아주머니는 아들한테

"야 여기 잘 서봐 사진 찍어줄께 남는 거라곤 사진 밖에 없어"

이를 지켜보던 같이 따라온 이웃 아줌만지 이몬지 아님 친군지 이 여자 하는 말

"사진 찍어 남는게 뭐있어? 먹을 수 있기나 해~ 돈이되 썅넘의 거"

이 여자 어투로 봐 이혼 녀 아님 실연당한 녀?

며칠 전 명함을 주고받은 그는 장한평에서 자동차 부속 가게를 하고 있고

나름대로 성공하여 먹고 살기에는 지장 없다고 하며

아들도 자기와 같은 사업으로 지금은 의정부에서 따로 가게를 운영하고 있다고 했다.

그는 나 보다 한 살 아래였으며 주말을 제외하고 거의 매일 새벽 아차산을 찾는단다.

그 뒤로 우린 먼저 오는 사람이 그 의자에 앉아있게 되었고 자연스레 만나는 곳이 되었다.

왠지 끌리고 기다려지는 의자.

지금도 아차산 해돋이광장 옆 그 의자는 주인을 기다리고 있을지도 모른다.


입구에 들어서면 전등이 자동으로 켜지며 음악이 나오고

화장지가 항상 구비된 깨끗한 수세식 화장실,

걷는 길 주변 곳곳에 핸드폰 충전소가 있고

밤에는 불을 밝혀주고 인공 경관폭포가 가동되고

곳곳에 운동시설들이 구비되고

나무가 울창한 계곡 으슥한 조명 그늘아래 경계심 없이 홀로 쪼그리고 앉아

배낭의 내용물을 꺼내놓고 뭘하는지 주섬거리는 중년 여인

그래도 무사한 치안이 잘되어있는 나라

운동화에 먼지 털어라고 에어건이 설치된 나라 대한민국


80 전 후로 보이는 노부부는 북한산 자락 아래의 가회동에서 거의 밤마다

이곳 아차산의 둘래길을 찾는다고 한다.

할아버지의 말

“세계 각국 여행을 많이 다녔는데 이 아차산 만큼 분위기가 좋은 곳은 없어요.

공기 좋지, 소나무 많지, 가로등 잘되있지, 특이 걷기 좋게 만들어진 데크,

그래서 여기를 그 먼 곳에서 거의 매일 찾아옵니다. 물론 제가 운전하지요.”


내로라하는 기업을 경영하고 권력 있는 자들의 언행에 짜증도 나지만

그래도 가끔은 참 좋은 나라에 살고 있다는 걸 세삼 느끼게 한다.


금년은 날이 덥고 건조해서 인지

예년에 비해 유독 모기나 기타 벌레들이 많이 줄어든 것 같다.

화장실에 한참을 앉아있어도 모기는 가끔 한 마리씩 보일 뿐이다.

곳곳에 설치된 가로등에 불이 켜져도 하루살이들이 모여들지 않는다.


해맞이광장을 앞두고 뒤에서 누가 큰소리로 인사한다.

“안녕하세요? 어제 그제는 안보이던데요.”

“아 그날 비올 것 같아 안 왔어요.”

“저는 그날 홀딱 다 젖었어요.”

내 뒤에서 바로 내 앞에 오르는 할머니에게 하는 인사다.


왼손으로는 로프를 잡고 오른손에는 지팡이를 짚고 힘겹게 오르는 할머니가 대답한다.

힘겹게 오르는 할머니에 비해 말소리는 카랑카랑하다.

이들은 굳이 얼굴을 안 보고 소리만 들어도 누군지 아는 사이다.

뒤를 힐끗 돌아보니 내 나이 정도 되는 이가 나의 뒤를 따르고 있었다.

할머니는 어깨로부터 등 그리고 허리, 심지어 다리까지 휘었다.

다리는 항아리 형으로 다리사이가 마름모꼴이다.


무릎부분이 밖으로 너무 많이 휘어서 나타난 형태다.

평생 너무 많은 일을 하신 것 같다.

짧은 바짓가랑이 아래로 종아리가 보인다.

혈색은 불그스레 피부는 광이 난다.

아주 건강해 보이는 혈색이다.

그런데 휠곳은 다 휘었다.


계단 하나하나 오르면서 줄을 잡는 왼손

그리고 지팡이 잡은 오른 손이 교차할 때 마다

들이마시고 내쉬는 숨도 같이 교차한다.

나는 천천히 그리고 조용히 할머니 뒤를 따르며

난 생 처음

오! 주여

나에게 저런 할머니들에게 도움을 줄 수 있는 여유만 있다면...


위 내용이 지난해 이곳 아차산 자락에 이사 왔을 때 오르며

한 할머니를 보고 카페에 올렸던 내용이다.

오! 주여 했던 그 할머니 이 더운 요즘도 매일 새벽과 저녁에 산을 오르내리신다.

내 걸음은 웬만한 사람이 따라오지 못할 정도로 빠르다.(분당 120~130보)

그러나 나는 감히 그녀를 추월하지 않고 조용히 뒤따르다 다른 길을 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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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3.

늘 그렇듯이 반바지 차림에 땀타올을 머리에 동여매고 오른다.

맬 때도 그냥 매는 것이 아니라 통상 오른쪽 귀 위에 매듭을 위치시키고

한 가닥을 길게 귀 뒤로 쳐지게 한다.

안면부나 목 등에 땀이 흐르면 그 쳐진 가닥으로 닦는다.

모자를 쓰고 다니 것 보다 편리하다.

물론 햇볕이 많이 쬐는 경우라면 당연히 모자를 써야하겠지만 새벽과 저녁에는 필요 없다.


하루 목표는 1만보 이상. 이를 헨폰에 데이터가 기록되도록 설정해 놨다.

많이 걸을 때는 2만보를 넘는 경우도 많다.

아차산 제2보루에 올랐을 때 상의는 이미 땀으로 젖은 상태였다.

집에서 아마 3천보 정도 되는 거리다.

보루 정상에는 주변의 나무를 제거하고 그 중 큰 나무만 몇 그루 남겨놓았다.

덕분에 시야가 트이고 전망이 좋다.

그래서 정상에서는 습관처럼 휘이 한 바퀴 둘러본다.

정상에는 통상 바람이 있다.

그런데 계곡 정자에 앉아 바람 없다고 투덜대는 사람도 있다.

시간이 허락하는 새벽은 용마산 정상에 까지 갔다 오기도 한다.


제2보루 정상에 한 아주머니가 자리에 앉아 바람이 반쯤 빠진 베개를 끌어안고

낑낑 거리며 주물럭거리고 있다.

“아저씨 이거 바람 좀 빼주세요…….”

이 아주머니가 독립수 그늘아래 자리를 깔고 있다가 철수 준비 중이다.

바람 넣은 베개에 바람을 빼다가 잘 안 빠지니까 나보고 좀 빼달란다.

나는 베개를 받아들고 그녀의 곁 공간의 빈자리에 앉았다.

“나는 다른 바람도 잘 빼는데...” 혼자 중얼거린다.

바람 넣는 부위를 엄지와 검지로 살며시 잡으며

“이거 여자 젖꼭지 잡는 식으로 살며시 잡고 이렇게 눌러줘야 하는 겁니다.”

“오빠 잘 하시네요.”

좀 전 아저씨라 하더니 금방 오빠로 호칭이 바뀌었다.


“네 제가 요, 별명이 멕가이버 이었거든요. 뭐든지 잘 고치는 멕가이버”

바람은 다 빠지고 그 베개를 그녀한테 건네고 일어섰다.

그녀도 마지막 자리를 접고 일어서더니

“읍빠 이거 좀”

이젠 지팡이를 펴달라고 한다.

그러면서

“아까 막걸리를 마셨더니 아직 해롱해롱 안 깨네요.”

어째 좀 이상하다 했더니

“얼마나 마셨는데요.”

“한 병 반”

“언제 쯤요?”

“한 시간 쯤 됐는데 …… (꺼억 트림하며) 읍빠 나 술 5만원어치 먹어봤으면”

“그럼 우리 술 마시러 갈까요. 까잇 거 오만 원어치야”

“예 좋아요. 읍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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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4.

날은 더우나 그래도 산이라 바람이 솔솔 불고

정상의 독립수 그늘은 낮잠 자기 참 좋은 조건이었다.

이 아주머니 여기서 막걸리 한 잔하고 한숨자고 일어난 모양이다.

“뭔 소리, 막걸리 한 병 반 마시고 해롱거리면서 5만원 어치 못 마셔요.”

지팡이 길이를 조정하는데 아직 덜 잠갔는데 뺏어간다.

“더 길어야 좋은데”

“긴 것 보다 통통한 게 좋아요”

“길고 통통 하머 더 좋지 줘 봐요 마무리 해 드릴게”

“7시 전에 내려가야 되요. 이제 곧 어두워지니까”

“어두워지려면 아직 멀었어요. 좀 더 있다가 술 깨면 내려가요 내려가는 길이 위험하니까.

7시 반 돼야 해가지고 8시 되도 괜찮아요.”

“아니 내려가야 되요. 저년이 안 내려오고…….”

“저년이라니 어느 년 말이요?”


연신 지팡이를 만지작거리며

입으로 50여 미터 떨어진 곳의 나무아래 남자 둘과 같이 앉아있는 곳으로 가리키며

“아니 저년이 빨리 내려오라카이 아까부터 연애질한다고 안 오고…….”


가르키는 곳을 바라보니

조금 떨어진 곳의 숲속에 이리저리 의자랑 탁자들을 주변에 깔아놓고

막걸리랑 소주 등 술과 아이스케키 등을 파는 곳이 있다.

남자 둘과 같이 앉아 농아리를 까는 한 50대 중반으로 보이는 여인을 보고 하는 말이다.


데크 길 중간에 더 넓게 만들어 놓은 휴게데크가 있다.

이곳엔 매일 저녁 몇몇이 음악을 틀어놓고

에어로빅 비슷한 몸짓으로 열심히 흔들어 대고 있다.

나는 나의 운동 걷기를 잠시 멈추고 그들을 구경하고 있다.

“아저씨 같이 해요”

리드로 보아지는 아주머니가 말을 건다.

나중에 안 사실이지만 그녀를 선생님이라 불렀다.


몸은 퉁퉁해 보이는데도 유연하고 현란하게 움직인다.

특히 히프의 움직임이 아주 현란하지 못해 자극적이다.

잠시 구경하던 나

그냥 걷는 것 보다 짧은 시간에 전신에 더 많은 운동이 될 것 같았다.

자연스레 그들과 어울렸다. 내가 원래 운동하머 좀 하는지라 대충 잘 따라했다.


이를 본 그녀

“아저씨 참 잘하시네. 몸 보니 원래 운동을 많이 하셨네.”

아마도 자기 꺼 만한 나의 유방을 보고 하는 말 인지도 모른다.

나의 티는 내 몸에 딱 달라붙은 걸 입었다.

그러더니 집중적으로 나를 지도한다.

"조금만 같이 연습하시면 다른 남자분들 지도할 수 있을 것 같아요."

어느새 나도 모르게 그들의 속으로 빠져들어 같이하는 사람들에 못지않게

같이 보조를 맞추려고 노력하고 있었다.

얼마나 흔들어 댔는지 땀으로 팬티까지 젖어옴을 느낄 수 있었다.


그리고 마무리하는 단계에서 그녀는 또 조깅을 한다고 했다.

그러면서 하는 말 “한 3년 전에는 거의 환자 수준이었어요.

갑상선도 있었는데 지금은 거의 사라지고 몸 컨디션은 아주 좋아요.

요즘은 구리시에 에어로빅 지도까지 하고 있어요.”

그렇다고 쫙 빠진 그런 몸매는 아니었다.


주변에서 ‘몸 많이 빠졌어요.’ 한다.

“올해 얼만데요?”

“65세 용띠입니다.”

아니 용띠라면 갑장

“저도 용띠입니다.”

“아 그래요 반갑습니다.”

우리는 악수를 나누며 인사를 나누었다.

“이제 매일 오세요. 오후 7시 20분부터 해요. 장소는 여기”

“7시 20분이면 될까? 좀 일찍어서…….”

그녀와 같이 운동한 첫날 쓰지 않던 근육들을 무리하게 흔들어 덴 바람에

이틀 동안 온몸이 뻑적지근하여 혼났다.


이날 이후 안산, 대부도로 이틀간 임무 나갔다 들어온 날,

같이 운동을 마치고 내려오던 중

“우리 갑장이니 말 텁시다.”

내가 먼저 제의했다.

“아, 좋아요. 그라머 뭐라 부를까?”

“그냥 최씨라 불러요. 그 쪽은?”

“아 나는 박이요. 헨폰 번호?”

자기가 폰을 꺼내 나보고 불러라 고한다.

좀 귀찮을까도 생각해 봤지만 일단 불러주고

“전화는 받지 못할 경우가 많으니 메시지나 카톡으로 부탁해요.”라고 당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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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5.

한 날은 운동을 시작한지 몇 분이 안 되어 소나기가 쏟아졌다.

하도 오랜만에 오는 반가운 비라 기꺼이 맞으며 운동을 계속했다.

곧 그치려니 하고 계속하는데 그치지 않는다.

동서울 지역의 하늘이 아주 새카맣다.

그 비구름이 곧 우리에게 몰려올 것 같았다.

그야말로 땀과 빗물이 범벅 되어 펜티속까지 젖을 무렵

그녀가 “그만하고 갑시다.”


매일 참석하는 이는 많아야 8~10명 보통 5~6명 그기에 남자는 1~2명

그녀가 시키는 대로 잘 따라하는 내가 당연히 인기다.

물론 연령대는 50대 후반에서 60대 후반사이

이미 비가 올 거라 예상했는지 서너 명이 우산을 가져왔다.

이날 남자는 나 혼자.

그 중 한 젊은 여자가 우산을 펴더니 나에게 받쳐준다.

이미 젖은 몸이라 “아이 다 젖었는데요. 괜찮아요.” 하고 사양을 해도 받쳐준다.

나는 내가 우산을 받쳐줘야겠다고 그녀로부터 우산을 받아들었다.

뒤에서 “이거하고 바꿔요.” 하고 리더가 자기 우산이 더 크니까 우리 둘과 바꾸자고 했다.

들고 있는 것 보다 좀 더 컸다. 물론 고맙다고 하며 바꿔 들었다.


나는 내 옷이 젖든 말든 우산의 기울기를 그녀 중심으로 들었다.

우산 살 끝의 물방울들이 내 머리의 정수리 부분으로 주르르 떨어지기도 한다.

리드는 곧장 홀로 빠른 걸음으로 앞장서 멀어져가며

운동할 때 틀어놓았던 노래를 부르며 우리 둘을 떼어놓고 저 멀리 어둠속으로 사라져 간다.


‘야~~야~~야~내 나이가 어때서

사랑에 나이가 있나요


마음은 하나요 느낌도 하나요

그대만이 정말 내 사랑인데


눈물이 나네요 내 나이가 어때서

사랑하기 딱 좋은 나인데


어느 날 우연히 거울속에 비쳐진

내 모습을 바라보면서 세월아 비켜라

내 나이가 어때서 사랑하기 딱 좋은 나인데‘


다른 이들도 그녀를 따라 종종 걸음으로 점점 멀어져 갔다.

나는 속으로 ‘그래 니 나이 어떠면 내 나이는 어떤데...’


어둠이 짙게 깔린 우중의 산속

비는 띄엄띄엄 서있는 가로등 주변으로 집중적으로 내리는 같았다.


하나의 우산 속에 두 사람

하나는 남이요 하나는 여라

분위기가 예사롭지 않다.

한 발 한 발 옮길 때마다

우산 든 오른 팔꿈치에 몰캉몰캉한 것이 스친다.

처음엔 서로 걷는 페이스가 맞지 않아 부딪히는 것 같았다.

발을 맞추어도 계속 스친다.

참으로! 참으로 묘한 기분이 발동한다.


비록 셔츠는 젖었지만 스칠 때마다 따뜻한 온기마저 느낀다.

그냥 스친 건지 스쳐오는 것인지 분간하기 곤란하다.

심장이 경기를 일으켜 박동이 요란해지는 것 같았다.

심지어 말초신경에 자극이 인다.

그러나 나는 끝내 태연한척하고 내색하지 않았다.

느끼지도 못하고 눈치도 채지 못하는 사람으로 오인한 것은 아닌지

나의 바보스러움이 드러난 지도 모른다.

만약에 그런 기회가 또 오면 그때는 과감하게 감정을 표출시킬 수 있을까?

과감하기보다 그냥 느낀대로 표현할 수 있을까?


남자가 이런 경우에 느끼지 못한다면 남자로써 삶은 죽은 삶이리라

여자의 섹스 수명은 생명이 다하는 때 까지라고 한다.

자고로 남정네들은 평소에 잘 관리하여 오래토록 남자의 구실을 할 수 있어야 하느니라.


“집에 비가 쳐 들어올 텐데 문단속해야하는데…….”

혼자 중얼거린다.

이 여인도 느끼고 있을까?

느끼고 다른 곳으로 관심을 돌리는 걸까?

순간이지만 별별 생각이 스친다.

“집에 누구 없어요?”

“아들이 있는데 집안일에 관심이 없어요.”

“남편은?”

“남편도 있는데 그 역시 집안일에 관심이 없어요. 늦게 들어오고 그나마 아들이 나아요.”

남편이 집안일에 관심이 없다?

남편에 대한 어느 정도의 불만이 있다는 걸 느낄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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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6

하나의 우산을 둘이서 받치고 간다는 핑계로

우리는 앞서가는 사람들로부터 자연스레 뒤 쳐졌다.

아차산 초입 갈림길에 다다랐다.

나는 왼쪽으로 그녀는 오른 방향으로 가야한다.

우린 서로 우산을 양보한다.

끝내 나보고 가져가란다. 그러면서 하는 말

“우산을 가져 가셔야 또 나오시지요.” 한다.

내가 또 나왔으면 하는 바람으로 들린다.

“아, 안 그래도 여건만 되면 나올 겁니다.”

결국 내가 양보하고 돌아서자마자 빗줄기는 가늘어지더니 이내 멈추었다.

우린 그렇게 헤어졌다.


아마 오늘 또 그녀를 볼 수 있겠지

그리고 내일도…….

그러나 그 뒤 일주일이 지나도록 내가 시간을 내지 못했다.

매일 저녁이면 마지막 그 광경이 내 머릿속을 꽉 채운다.

내일이면 또 충북 제천으로 가서 추석 전까지 머물 것이다.

만약 내가 대쉬한다면 사랑을 두고 흥정 해 오진 않을까?

사랑은 그야말로 순수해야하는데... 사랑에 무슨 조건이란 있을 수 없다.

조건을 요구한다는 것은 결국 흥정하는 것이나 다름없다.

흥정하는 사랑은 매춘행위에 속한다.


사랑한다 하옵시고 분에 넘치는 선물공세나

심지어 승용차나 집을 사준다거나 하는 것도 사랑의 대가로 볼 수 있다.

사준 조건으로 나의 범위 속에 묶어둔다거나 떠나지 않는 조건으로 받았다면

이는 순수한 사랑이 아니다.

순수한 사랑은 잡다한 흥정없이 그저 순수해야 그 사랑이 오래오래 간다.

한 마디로 그냥 그저 좋으면 된다.


“어머머 얘들 봐 사랑할라카네”

“가능할까?”

“응 가능해”

두 여인이 검은 개를 데리고 데크길을 가는데

맞은편에서 한 여인이 흰 개를 데리고 오다 서로 맞닥뜨렸는데

검은색의 개는 흰색의 개에 비해 덩치가 많이 크다.

그런데 작은 개가 큰 개의 등위로 기어오른다.

개들이 첫눈에 반했는지 만나자 마자 서로 냄새를 맡으며 사랑행위를 하는 걸 보고

나누는 대화다.

덩치가 엄청 차이 나니까 이를 보고 가능하겠느냐는 것이다.


내가 느끼기에는 아주 자연스런 사랑 행위다.

될지 안될지는 그냥 두고 봐야하는데

아쉽지만 두 마리의 개는 주인의 목줄에 끌려 주인이 가는 길을 따라야했다.

끌려가는 두 마리의 개, 뒤돌아보고 또 돌아보고


어린이 대공원에서는 하늘을 향해 레이저 불빛을 쏘아 데고

더 먼 한강 둔치에서 폭죽으로 불꽃놀이 하느라 하늘이 여기 번쩍 저기 번쩍 요란하다.

습한 날 밤이라 그런지 길에 개구리가 뛰어나왔다. 참개구리다.

길가에 앉아있는 사람들이 지나가는 사람들에게 개구리가 밟힐까봐

“개구리, 개구리” 하고 소리쳐 경고한다.


개구리 하니까 지난 안산시에서 항공방제 때 농민들이 하는 말이 생각난다.

최근에 안산시 외곽 논에 미꾸라지가 많아 도랑에 물이 드나들 때 참개들을 볼 수 있고

미꾸라지 잡는 사람들이 있다고 한다.

또한 농약도 저 농약으로 개발되어 벌이 직탄을 맞아도 죽지 않는단다.

벌이 멸하면 인간도 멸할지 모르니까.


인간은 이렇게 주변의 인연으로 자연 속에 자연과 어우러져

자연스럽게 서로 사랑하며 생을 즐긴다.

그로부터 나는 저녁에 아차산을 오를 때 마다 비를 기다린다.

오늘 저녁에 또 비가 오면 좋겠는데...

어쨌든 그녀를 만날 수 있는 것도 10월 말까지 시한부다.



                                             2016.  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