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종도 백운산 산행을 마치고
소리통이 조용한 아침을 깨운다.
“전화 오는 데요” 마누라의 말이다.
발송인의 이름을 보는 순간 머리털이 하늘로 솟구친다.
여자다.
급하다.
얼른 소리를 최대로 줄여야 한다.
갑자기 지은 죄도 없는데 손이 떨리고 마음이 떨린다.
조용한 아침이고 곁에 마누라가 있었기 때문이다.
나는 직업상 지난해 같은 경우 300일 이상을 외지에서 출장생활을 했다.
이런 사람을 남편이라고 같이 사는 부인이
남편에게 여자한테서 전화가 온다고 하면
이상하게 생각할지 모를 끼고
만약에 의심을 하게 되면 얼마나 불안할까!
자기한테는 이야기도 안 해주고 어떤 여자와 산행을 간다는 것을 안다면 말이다.
나는 그런 마음에서 조금이라도 이상한 기미를 주지 않으려고 애를 쓰고 있다.
연중 300일 이상 남편을 밖으로 내돌리는 여자가
남편에 대하여 의심을 가지고 한번 신경 쓰기 시작하면
그 스트레스는 당사자가 아니면 짐작하기 힘들 것이기 때문이다.
물론 밖에 나가면 남의 남자라고 생각하는 게 맘이 편할지 모르지만…….
이때 부엌의 밥솥은 "칙칙" 소리를 내며
연신 뜨거운 김을 내뿜으며 좀더 기다리라는 신호음 내고 있었다.
어제 저녁에 마누라한테 내일 아침에 산에 갈 거라고 해서
나름대로 일찍 일어나 아침을 짓고 있는 중이었다.
지난 번 호명산에 갈 때는 아침을 못 먹고 갔었기 때문에
마누라 나름대로 미안해서 밥을 짓고 있는 중이다.
시계는 8시 40분쯤을 가르키고 있었다.
산행을 하려면 이 시간에 집에서 출발을 해야
서울역에서 인천공항으로 출발하는 10시7분차를 탈 수 있는 시간이다.
이차를 놓치면 뒤차는 30여뒤로 알고 있었다.
실은 바로 뒤에 있었는데......
친구들과의 약속이 07분차 였기 때문에 나는 그 차 시간에 맞추려고 애를 썼다.
“야! 집시야 지금어디야”
오늘따라 그 쪽의 목소리가 왜 그리 큰지
소리를 최소로 줄였는데도 요란하게 방안을 찌릉찌릉 울리는 것 같았다.
곁눈으로 마누라의 눈치를 보며 받는데
온몸의 땀구멍이 열려 식은땀이 솟구치는 것 같았다.
아니 소름 끼친다는 말이 더 알맞을까?
“응 집이야”
“야! 어서 나와, 나 이제 출발하는데”
나는 달리 대답을 못하고
“응 알았어. 지금 출발할게”
이젠 마누라가 내 눈치를 보는 것 같았다.
아직 밥은 덜 되었고 지금 출발한다고 하니
“떡국 끓여줄까요?”
“떡국은 빨리 끓일 수 있는데”
“응 괜찮아요. 그냥가지 뭐”
하고는 주섬주섬 배낭을 준비하고 옷을 입는다.
나올 무렵 마누라가 떡국을 넓은 대접에 떠서 준다.
뜨거운 것이 잘 식어라고 배려해준 것이다.
후루룩 물 마시듯 한 그릇을 해치우고
곧장 대문을 나섰다.
이때 까지만 해도 나는 산행을 포기하고
결혼식장에 가는 걸로 내심 결정을 하고 있었던 것이다.
밥솥에서 칙칙 소리 나는 것 보고 나가기가 매우 미안해서 내린 결정이었다.
전화를 받는 순간 오늘의 계획이 갑자기 바뀐 샘이다.
우리 인생도 아마 순간적으로 이렇게 바뀌기도 할 것이다.
순간의 선택이 평생을 좌우하는 순간 말이다.
나는 나가자마자 엘리베이터를 타고
서울역으로 가기위해 어느 방향으로 갈 것인가? 머리를 굴린다.
광장동 방향으로 갈 것인가.
망우리 방향으로 갈 것인가를 …….
집 앞에서 일단 택시를 집어탔다.
그리고는 바로 향기란 에게 길을 물었다.
상봉역으로 오면 거기서 나를 기다린다고 했다.
나는 마음이 급한데
아침에 눈이 조금 날리는 바람에 길이 미끄러워 택시도 빨리 달리지를 못한다.
거의 다 온 것 같아서 택시 안에서 기사에게 상봉역의 입구를 물었다.
혹시 상봉역 지나온 것 아닙니까?
“바로 조기 있잖아요” 한다.
“어디요?”
“오른 쪽에 보이네요”하며 방향을 가르쳐 준다.
그때서야 역명의 글이 보이고 역사의 전체가 보인다.
이때까지 나는 지하의 상봉역만 알았지
지상에 새로 지어 개통된 지상의 상봉역은 처음 와보는 곳이기 때문이다.
우리 둘은 전철에서 여기저기서오는 친구들의 위치를 파악하고
우리가 가야하는 길을 모든 수단을 총동원하여 길의 방향을 잡는다.
향기의 말에 의하면 서울역 어디인지 모르지만
서울역에서 도로를 건너 지하로 한참을 내려간다는 것이다.
나는 속으로 그렇지 않을 것이다.
서울역 하나에 연계되어있을 것이라고 믿고 일단 가보자는 심산이었다.
우리는 전철 내에서 계속 시계를 들여다보며 남은 역을 세고 있었다.
드디어 서울역
전철의 도어가 열리는 순간 10시 정각
이제 7분 내로 뛰어야한다.
한 번도 가보지 못한 생소한길을 개척하는 개척정신을 발휘하는 순간이다.
나는 이정표에 온 신경을 집중하였다.
“인천공항철도”라는 간판을 보는 순간
곧장 가리키는 대로 뛰기 시작한다.
힐끗힐끗 뒤 따라오는 향기를 놓칠세라 확인하며 뛴다.
뛰는지 구르는지 일단을 잘도 따라오는데 배낭이 무거워 보인다.
오늘도 저 보따리에 먹을 것이 많이 들어있을 텐데??
하고는 내가 받아 매겠다고 했다.
그녀는 끝까지 자기가 매고 뛰겠단다.
우린 계속 뛰고 또 뛰었다.
지나치는 많은 인파들이 우리를 보고 있었고
앞에 인간 장애물이 나타나면
헐떡이는 숨소리를 높여 자연적으로 옆으로 길을 트게 하였다.
계속 이정표는 확인되었고
뛰면서도 샛길로 빠진다는 의심은 하지 않을 정도로 이정표는 잘 되어있었다.
드디어 최종 이정표 학인
이제부터는 에스컬레이터를 타고 내리막 계단을 내리뛰면 되는 것이다.
한참을 뛰었는데 지하 3층 아직 4층을 더 뛰어 내려가야 한다.
아래로 까마득하게 보인다.
한참을 정신없이 뛰다보니 에스컬레이터의 계단 높낮이가 흐려 보인다.
그러면서도 뒤를 확인하는 데는 개을리 하지 않았다.
조그만 여자가 무겁게 보이는 배낭을 메고 따라오는 것이 대단했다.
속으로 구르면 더 빠를 것 같았다.
그래서 나는 속으로“야! 구르는 게 빠르겠다”
라고 혼자 속으로 소리쳤다.
밖으로 소리쳤다가는 웃음 때문에 진짜로 구를 것만 같았다.
그러면서도 나는 먼저 도착하여 열차를 붙잡아놓고
그녀를 기다릴 심산이었다.
방법은 문이 닫히려면
다리를 문 사이로 집어넣어 다시 문이 열렸다 닫히는 시간이라도 벌어주고 싶었다.
최종 출구를 확인하고 플렛홈을 보니 열차가 문을 열어놓고 기다리고 있었다.
엄청 반가웠다.
최종출구를 들어가며 시계를 힐끗 보니 10시 8분이었다.
순간 머리를 스치는 불안감.
이 역이 출발역인데 이렇게 1분이 넘도록 출발 안했을 까닭이 없다는 것이다.
그 때서야 아차 놓쳤구나! 했는데 방송이 나온다.
“인천공항으로 가실 분은 다음열차를 이용하라는 멘트다”
으으 뒤차로구나
그리고 인천공항까지 가는 차가 아니구나하는 감을 잡고
출입문 상단의 노선을 보니 종착역이 검암역이다.
우린 숨을 돌리고 향기는 땀을 훔치며
"오늘 운동할량 다했다"고 했다.
우린 검암역에 내려 기다리다가
다음 열차를 타고 운서역에서 일행과 합류하여 하루의 산행을 즐겁게 보냈다.
물론 산 정상에서 수리산이 끓여준 오댕김치라면 기똥차게 맛잇게 잘 먹었고
......................이하 생략
마지막에 묵객, 수리산, 영철, 사람향기, 향기란에게
인사를 제대로 하지 못하고 먼저 와서 미안하다.
한편 개인적으로 금년도 전반기에는
이 좋은 친구들과 같이 산행하는 것이 불가하다는 생각에 좀 서운하다.
2011.1.22
서울역사 내의 이정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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