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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글

순수성이 추락하고 있다.

by 최재곤(집시) 2013. 3. 16.

어느 가을 날 아침, 비가 오더니 점심시간 무렵 날이 개었다.

오후의 시간은 선택과목 시간이라 옆 친구에게 대리 대답 부탁하고

친구 둘과 학교 담을 월장했다.

 

고등학교 3학년 때 일이다.

교실 건물 뒤에는 건물 가장자리를 따라 담이 쳐져있고

담 따라 수양버들나무들이 심어져있었다.

우리는 수양버들나무를 타고 올라가 담을 넘었다.

 

자취집에 바케스와 뜰대를 빌리고

미리 사다 놓은 사이나를 챙겨 미꾸라지 잡으러 동네 뒤 강변으로 갔다.

강둑은 오래전 공사를 한 덕에 철망으로 된 돌망태로 언덕이 되어있어

그 돌 사이로 미꾸라지를 비롯한 작은 고기들이 많이 서식하고 있었다.

 

바케스에 물을 반 정도 채우고 사이나(청산가리)를 풀었다.

사이나가 굵은 사탕처럼 단단했기 때문에 두 개의 돌로 부숴가면서 녹여야했다.

다 녹은 물을 강변의 물 가장자리를 따라 조르르 부었다.

 

잠시 후 예상대로 미꾸라지들이 조르륵조르륵 기어 나오더니

흐느적거리며 물에 떠올랐다.

건진 미꾸라지의 양은 반 바케스 정도 되었다.

 

자취집으로 돌아와 주인집에 잡은 미꾸라지 반 정도를 주고

끓일 양념과 시례기를 얻었다.

끓이는 도중 한 친구가 막걸 사러간다고

두 되짜리 누런 양은 주전자의 손잡이를 왼쪽 팔뚝에 걸고

손은 상의 포켓에 넣고 오른손엔 불 붙여진 담배를 꼬나집고 나갔다.

 

잠시 후 막걸리 사러갔던 친구가 헐레벌떡 뛰어 들어오면서

“야 C 담배 피우며 나가다가 골목 저쪽에서 선생님이 오기에 도망 왔어” 하는데

상의 오른 쪽 포켓에 불이 타 들어가며 연기가 모락모락 피어오른다.

얼른 후다닥 껐으나 교복 주머니는 이미 주먹하나 들어갈 정도로 구멍이 뚫렸다.

 

그 친구 선생님을 보자 어쩔 줄을 모르고

담뱃불이 붙은 담배를 주먹으로 감싸 쥐며

상의 포켓에 넣은 것이 포켓에 불이 붙은 것이다.

 

일단은 그 선생님으로부터 위기를 모면하고

막걸리와 잘 끓여진 추어탕을 안주로 하여 부어라 마셔라 했다.

거나하게 취했을 무렵 한 친구가 화장실에 가더니

올 시간이 지났는데도 들어오지 않는다.

 

내가 확인하러 갔더니

이 친구 화장실에서 볼일 보다가 취한 몸을 제대로 가누지 못하고

쓰러져서 술 취했다는 소리는 안 하고 혀 꼬부라진 소리로

“야! 재곤아, 재곤아, 나, 사이나 맥인 미꾸라지 먹었는데

내가 사이나 먹은 거나 같잖아, 나 죽는다. 야! 내 병원에 델다 도” 한다.

 

산에 자살하러 올라간 사람이 날이 추우니까

불을 놓아 쬐려다가 산불을 낸 사람도 있으니

인간은 곧 죽을지라도 순간 살아야겠다는 의식이 강하며

죽음의 두려움은 어쩔 수 없는 모양이다.

 

우리는 살아오면서 한참 젊을 때 앞날을 보는 개념과

하루하루 늙어가는 지금 앞날을 보는 개념은 너무나 다르다는 걸 느낄 것이다.

우리가 어릴 때는 그야말로 목적이 없는 순수 그 자체의 생각이고 놀이였다.

목적이 개입되면 그것은 거래이며 장사다.

 

요즘의 아이들은 전부가 목적을 두고 생활하지 않는가?

너무나 많은 시대의 변화 속에 인간의 의식까지 변화 시키고 있다.

즉 점점 더 순수성이 사라지는 것 같다.

 

사람은 모방의 동물이라 서로 닮아가기 마련이다.

닮지 말아야겠다고 결심을 하면서도 부지불식중에 닮아간다.

 

주변의 삶을 잘 살펴보면.

순수성이 짙었던 우리의 의식도 현실에 닮아가고 있다.

그리고 변한 의식은 또 대물림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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