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5.6.13일 쓴글입니다
강릉에는 작년 가을에 다녀왔다고 그래도 낮설지 않은 것이 다행이었다.
동기생 산장에서 15일간 공짜로 신세지다가 병원에서 5일간 요양(?)하고 돌아오자마자,
지난 6.9일 아버지께서 입원중이신 경주 동대병원에 들렸다가 고향 집에 홀로계시는 엄마를 보러
집 대문에 이르니,
엄마는 아들이 온다고 대문간에 나와 잠시의 시간이 얼마나 지루했는지 대문 주변에 잘 자라고있는
잡풀들을 뜯고 계셨다.
이미 머리는 하얗게 된지 오래되었고 거기다 듬숙듬숙하기도 하다. 뼈 마디마디는 관절염이 더이상
심해질 수 없을 정도로 악화되어있으며 허리는 꼬부라질데로 꼬부라졌다. 그래서 걸음도 제대로 못걷고 휠췌어에 의지하여 나들이를 하신다.
곧바로 옷을 갈아입고 밭에가서 김매기를 하였다.
저녁식사는 간단히 된장에 상추 쌈으로 때웠다. 식사후에 동생이 왔다.
셋이 같이 앉아 이런 저런 이야기 하다가
"엄마 며느리 시집왔을 때 왜 그렇게 까타롭게했어, 아부지까지,.....그라고 아이들한테도"
"뭐가, 그거야 그래야 집에와서 살랑가 싶어서 그랬제"
"내가 군대생활하고 있는데도"
"하기사 쌀 좋다고 좀달라는데 너거 아부지가 주지말래서 안줬지"
"아마 양식없으면 들어올 줄 알았을끼야"....................
이튿 날 아침에는 비가와서 김매는 걸 포기하고 우산들고 포도밭에 나가 가지치기를 하였다. 사람이
없어 손질을 못해준 포도넝쿨이 지 멋대로 뻗어있는 놈들을 어떻게 손질해야 할지....비를 맞으며 한줄의 3/4정도 대충대충 잘라가는데 비가와서 그런지 손가락과 발가락에 쥐가나사서 그만하고,
오후에 홀어머니 아닌 홀어머니를 혼자두고 이튿날 임무 때문에 버스를 타고 올라오는데
한참동안 눈물이 앞을가렸다.
내일 또 마누라하고 같이 내려가려는데 지금 처형과 처 이모가 와서 노인네들의 밑반찬을 준비하고 있다. 정말 고맙다,
그렇게 괄쎄를 받았던 마누라도 같이..................
울 아부지는 금년 80세이며
6.25 참전용사로 앞록강 까지 전진하여 초산에서 연대장이 연대원을 모아놓고 일장 연설하는 도중, 적의 포탄이 날아오는 바람에 전부 풍비백산이 되어 전 연대원이 갈갈이 흩어져 나름대로 후퇴하는도중에 적 포탄의 파편에 부상을 입고 부산 병원으로 이송되어 그길로 병원 생활을 많이 하였으며 내가 어릴때 그 영향으로 동내에서 아스피린 주사를 많이 놓는것을 보기도 하였다.
당시 화랑무공훈장을 2회 수상(내가 육본에 있을 때 찾았슴)하였으며 국가유공자됨을 자랑으로 여기고 살아오셨다.
울 엄마는
뜨거운 여름날 보리타작하다가 갑자기 방으로 들어간다.
그러면 아부지가 "일하다가 방에는 와가노" 하고 화를 낸다.
잠시후에 내 동생인 얼라의 울음소리가 났었다.
이게 우리 엄마다.
이제 그 포도밭과 뒤에있는 포도밭 그리고 어릴때부터 드나들던, 명절에는 삼촌들이나 모두가 모이던 정든집을 포함하여 정리하고 아파트를 마련하여 모실려고한다.
300평짜리 별도의 포도밭을 제외하고 그 땅과 집들을 모두 동생에게 양보하였다.
나는 이정도면 족하리라 생각하고...........
지난 6월 2일(2008) 마누라와 같이 고향을 다녀왔다.
아버지를 뵙고 어머니 묘에도 가보고
그 길에 포항의 친구를 만나고 돌아오는 길에
원래 내가 태어난 곳을 들렸으나 그 때의 집터 조차 분간할 수 없었다.
물론 여러체였던 집도 모두 없어지고
이제 새로 지은 집이 두어체 있었다.
저수지(심곡지 : 경주시 서면) 건너의 내 앞으로되어있는 산을 바라보며
나중에 저 산에다 장뇌나 심으면.......
어릴적 한 겨울에 저수지가 꽁꽁 얼었을 때
화목을 해서 얼음 위로 운반하던 생각 등등, 이생각 저생각 드는것이
누가 말한 것처럼 만감이 교체하는.......
그런 하루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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