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어느 날
아침 밥을 차리기 전에 먼저 며칠 전 백화점에서 사온 밤을 삶아 식탁에 내 놓으며 껍질을 까라고 한다.
"찬물에 담갔어?" 밤도 계란마냥 삶은 후 곧 바로 찬물에 적당히 담궈야 깔 때 손이 뜨겁지도 않고 속 껍질이 잘 벗겨지기 때문이다. 이것도 하나의 지혜다.
"응 담갔어" 나는 말없이 밤을 깐다.
이 밤은 딸에게 아침 먹기 전에 두어 개 먹이는 것이다.
역시 돈 주고 사온 밤이라 벌래도 없고 속살도 아주 실하게 찾다.
그걸 보고
"앞으로 밤은 절대로 주워오지 않는다. 아니 안 주워온다." '절'자와 '안'자에 더 힘을 주어 내 밷았다.
이 말을 들은 마눌이
"왜에 더 주워 오지" 하며 비꼰다.
사건은 이렇다. 며칠 전 경남 산청지역에 출장 중일 때 밤나무가 도로가를 따라 즐비하게 서있기에 지나가다 차를 세우고 밤나무 밑에 들어가보니 밤들이 많이 떨어져 있는 것을 무겁울 정도로 주워왔는데 거의 모든 밤에 벌래가 들어있었다. 나는 그래도 먼데서 주워온 것이니까 아까워서 벌래를 도려내며 먹는데 마눌은 아예 거들떠 보지도 않는다.
따라서 삶는 것도 내가 삶아야 했다.
"사먹는 건 그런데로 다 그 가치가 있는것이제 줏어온 밤이 오죽하겠어" 한다.
작은 딸하고 그럭저럭 밥을 다 먹어가는데
마눌이 반찬 그릇 하나를 더 내 놓으며
"김치를 안 내놨네"하며 슬그머니 내민다.
"밥 다 먹었는데 뭐, 벌써부터 저러면 안 되는데...그라머 내가 힘들어지는데...."하니까
"아니 자기나 안 그랬으면 좋겠어 나는 걱정하들들마"하는데
'까까오' 하고 헨폰이 울린다.
마누라 얼른 확인하더니 '오늘 큰 딸이 김치 담그려 오는데 엄마 시간 있냐?'고 묻는다는 것이다.
나는 그 사이 식탁을 다 치우고 물티슈로 식탁을 닦는다.
식탁도 행주로 닦는게 아니고 요즘은 물티슈로 닦는다. 참 편리한 세상이다.
"오늘은 큰딸하고 하루죙일 '나는 꼼수다'도 들으며 즐겁겠네, 나, 가요" 하고
나는 대전으로 가려고 문을 나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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