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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글

출근길 2025.2.7

by 최재곤(집시) 2025. 2. 13.

1. 27일 아침이다.

출장지에서 기간(1.17~6.30) 중 묵을 원룸이 있는 곳 평택(용이동)

지난밤부터 내린 눈이 발목까지 빠질 정도로 많이 내렸다.

숙소는 중부고속도로 안성IC를 나오자마자 즐비한 빌라촌에 있다.

주변에 유명한 곳으론 안성스타필드가 500여 미터 떨어진 곳에 있다.

 

헬기가 있는 근무지(안성시 원곡면 반제리)로 가려고 숙소를 나와 도로 상태를 확인했다.

큰 도로로 들어가기 전인 간이도로를 보니 차들이 길게 늘어서서 움직이지 않는 행렬을 보고는

아예 차를 운행할 엄두가 나지 않았다.

 

나는 이곳에서 기간 중 산불진화 임무를 수행해야 한다.

 

밤새 안전 안내 문자가 여러 번 들어왔었다.

따라서 걸어가기로 마음먹고

다시 방으로 들어가 장갑을 챙겨 들고 차 트렁크에 오래전부터 실려있던 골프화로 갈아신고 용감하게 걷는다.

골프화는 바닥에 돌출부가 많아서 미끄럼방지에 도움을 줄 것이고 어느 정도 방수기능이 있을 것으로 생각했기 때문이다. 목적지까지의 거리는 3.8km, 눈이 쌓인 길을 걸어야 한다. 눈의 깊이는 발목까지 잠기는 정도로 쌓여있었다.

 

밤새 내린 눈이 녹을 때 그 물이 헬기의 날개나 엔진 공기 흡입부와 조종계통에 흘러 얼어붙으면

엔진 작동이나 조종에 지장이 발생할 수 있어서 녹아 흘러내리기 전에 기체에서 털어내야 한다.

 

2. 집을 나와 얼마 걷지 않았는데 공기가 차다.

! 마스크?

짊어진 백에서 비상용으로 넣어놓은 마스크를 꺼내썼다.

오래전 코로나가 한 창일 때 어느 병원에 마스크를 안 챙겨가서 병원 밖에서 얻어쓰고 들어간 적이 있어서

그 뒤로 나도 누구에게라도 서비스할 기회가 있을까? 싶어서 가방마다 1팩씩 넣어놓았었다.

 

차들이 엉금엉금 기듯 한다.

도로의 눈은 차 바퀴에 이리 밀리고 저리 밀리어 범벅으로 만들어진다.

큰길을 지나고 좁은 길로 들어서면 지나가는 차를 피하고자 도로 가장자리로 비킬 때마다

눈 속으로 발은 빠지고 차가 지나갈 때까지 멈추었다.

다시 차가 지나간 바퀴 자리로 걷는다.

 

미끄러운 길인데도 겁나게 달리는 차들이 있다.

그럴 때마다 옛날 계룡시의 육군본부에 근무할 때의 기억이 떠오른다.

 

그날도 눈이 많이 온 아침이었다.

편도 2차선 고속도로 약간의 내리막길

나의 우측으로 추월하던 버스 바로 앞을 지나치나! 싶더니 좌우로 휘청휘청하더니

중앙분리대를 들이받고 우측 보호난간에 부딪히고를 반복하면서

차의 하부가 힘없이 부서지는데 그 파편들이 내 차 앞은 물론 이리저리 튕기어 나뒹굴어진다.

이를 목격한 순간 나도 당황하여 다리가 달달 떨리며 속수무책으로 브레이크를 살살 밟으며 가는데

버스는 우측 보호난간으로 미끄러지며 멈추었고 나는 간신히 무사통과했었다.

 

3. 그러나 오늘 나는 도로변을 걷고 있다.

차도 미끄럽고 나도 미끄럽다.

앞에서 오는 차들이 다가오는 순간마다 저 차가 나의 방향으로 미끄러지면? 하고

나는 어떻게 할 것인가를 생각하며 걸었다.

속으로 여차하면 옆으로 뛰어 낙법으로 뒹굴어야지,

아니면 정면일 경우 공중으로 점프하여 보닛에 올라타야지 하면서.’

 

같은 노면이면서도 군데군데 그늘로 제한을 받는 곳은 눈이 그대로 굳어져 있는가? 하면

나름대로 양지쪽은 녹아 도로의 표면을 들어내고 있다.

표면이 안전하다 싶은 구간은 본연의 페이스대로 걷는다.

방심하고 걷는 상태에서 일은 일어나고야 말았다.

속도 감속을 유도하기 위한 과속방지턱을 넘는 순간 엉덩방아를 찧고 말았다.

이 광경을 순간 저만치 마주 오던 거의 내 나이 또래 노인의 시선에 잡히고 말았다.

툭툭 털며 일어서서 충격받은 오른 손목을 만지작거리며 아무 일 없던 것처럼 걷는데(속으론 제법 아팠다)

서로 스치기 직전 아이 괜찮아요?”

, 네 괜찮습니다.”

조심하세요하고 지나간다.

 

나는 겸연쩍은 마음으로 양호한 지면일수록 방심하며 걷는 것이 인간의 심리이려니,

방금 그곳의 상태를 분석한다.

노랑 하얀색을 30cm 정도의 폭으로, 번갈아 사선으로 칠해진 곳의 노란색 부분은 완전히 말랐는가 하면

흰 부분 중 해가 위치한 반대 경사면이 반질반질하였다.

따라서 눈길(노면의 상태가 주의를 요구하는 곳) 을 걸을 때는 먼 곳으로는 흠칫흠칫 훔쳐보고

발을 옮겨 내딛는 부분을 유심히 봐야 한다는 걸 강조하고 싶다.

 

또 한 번은 중부고속도로 회덕 부근 도로가 정비되지 않았을 때의 상황이다.

상행선오르막 정상 부근에서 좌로 휘어진 내리막 시작 길에서 7중 추돌이 있었는데

7대 중에 제일 앞의 차가 나였었다.

당시 추석 연휴 귀갓길이었는데 좌로 휘어진 오르막길을 신나게 달려 정상에 이르렀을 때

아 글쎄 앞에 차들이 멈추어있는 게 아닌가.

나는 급하게 브레이크를 밟으면서 백미러를 보며 뒤따라오는 차들이 나에게 부딪히면 안 되는데 하는데

다다다다 부딪히고 말았다.

비상 라이트를 켤 사이도 없었다.

누가 말도 하지 않았는데 부딪힌 차들은 우측 갓길로 나가 순서대로 세워졌다.

제일 앞의 내가 세워진 차들을 보며 제일 뒤까지 확인해 보니 모두가 앞뒤 범퍼들이 망가져 있었다.

망가진 상태는 모두 비슷비슷했다.

 

나는 모두 모이라고 하고 부서진 상태를 이야기하며 앞뒤끼리 해결해야 하는데

나와 제일 뒤차가 해결할 테니 중간분들은 그냥 가시는 것이 어떻겠냐고 물었다.

다들 그렇게 하겠다고 해서 모두 보내고 나니 뒤차 분이 명함을 주면서

견적 나오면 전화 주세요,” 했다.

명함에는 포항제철 과장이었다.

추석 후 견적을 받았는데 15만 원이었다.

수리 결과는 11만 원 4만 원이 남았다.

당시 과 요원들에게 수리비 11만 원 나왔는데 4만 원 남았습니다.

오늘 순대 먹으러 갑시다.”

 

4. 온몸이 땀으로 젖는다.

상의 지퍼를 열어젖히고 마스크를 벗고 모자를 벗어들고 거의 목적지 가까이 오면

일반 주민 주거지가 없는 외진 곳에 큰 공장 같은 건물이 있고

그 곁에 제법 큼직한 유치원이 있다.

아마도 이 유치원은 주변 근로자들의 자녀들을 위한 유치원인 듯했다.

이 주변엔 제설 작업이 잘돼 있었다.

흔적으로 보아 장비로 밀어내어졌다는 걸 한눈에 알 수 있었다.

아마 이 주변에 장비를 가진 주민이 있는 듯했다.

 

큰길을 벗어나면서 이면 도로를 따라 걷는다.

길은 하천 둑을 겸한 길이다.

하천 바닥의 한쪽 편으로 걷는 길이 형성되어있다는 걸 눈이 쌓인 표면의 형태를 보고 짐작할 수 있었다.

하지만 아직 눈이 녹지 않아 찻길로 걸어야만 했다.

좁은 이면 도로에 오가는 차가 교행할 땐 나의 발은 눈 속으로 깊숙이 빠져들 수밖에 없었다.

 

유치원 모서리의 주차장 공간을 벗어날 위치에 유치원 직원 내지는 선생으로 보이는 젊은 여성 세 사람이

넉가래를 들고 눈을 치우고 있었다.

아이고 수고가 많으십니다.” 나는 고마워서 인사를 건넸다.

네 조심해서 가세요하고 세 사람이 동시에 응답한다.

네 감사합니다.” 하고 지나가는데 좁은 길에 승용차 한 대가 저만치 엉금엉금 기어 온다.

나는 멀찌감치에서 길의 가장자리로 발은 푹 빠진 상태로 엉거주춤한 자세로 비켜준다.

 

가까이 왔을 때 나의 등 뒤에서 비추는 햇빛에 의해 운전자가 확연히 보였다.

젊은 여성이 운전대를 꽉 잡고 조심스레 운전하고 있었다.

내 곁을 지날 때 머리가 운전대의 휠에 닿을 정도로 꾸뻑 인사한다.

 

5. 드디어 목적지(공도 배수지) 입구(공도장례식장),

여기서 가파른 길 300여 미터를 올라가야 한다.

아무도 걷거나 차가 지나간 흔적이 없는 뽀드득뽀드득 뽀얀 쿠션을 밟는 기분이 드는 태초의 길,

이곳부터는 우리 팀만 다니는 길이다.

따라서 아쉬운 우리가 제설 작업을 해야 한다.

 

올해에는 지난 1.16일 안성으로 온 후로,

계속 악기상으로 1.26일 한 번 비행하고 1.27부터 1.30일까지 연일 눈이 내렸다.

어젯밤(2.6)부터 내린 눈으로 오늘 하루 종일 제설 작업 하였고

오는 며칠간은 산불 날 염려가 없을 것 같다,

올해엔 산불 끄러 왔다가 제설 작업만 신물 나게 하고 있네!

다만 오는 월요일은 안성소방서에서 산불 진화 훈련하는 데 참여해야 한다.

 

출근 소요 시간은 52,

5,700보로 보폭이 67cm 정도인 셈이다.

걷는 내내 미끄럼으로부터 넘어질세라 안전하게 지나치는 차들을 피하느라 신경을 많이 기울인 탓으로

속옷이 땀으로 모두 젖었고 모자챙에는 땀으로 흐르다.

아예 고드름이 매달렸다.

방송 발표에 의하면 14,

신발은 방수기능을 무색하게 양말까지 흥건히 젖어있었다.

아마 발목 사이로 들어간 눈에 의해 젖은 것으로 본다.

길이 미끄럽지 않고 원만하다면 3.8km니까 38분 소요가 정상적인 나의 걸음 속도였다.

이젠 나이도 나이이니만큼 걸음 속도도 느려진 데 대한 씁쓸함을 느낀다.

아!~~~~ 세월이여~~~

2025.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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