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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글

사위 둘 오던 날

by 최재곤(집시) 2014. 1. 31.

사위 둘 오던 날

 

계산대에 대파, 쪽파, 두부, 육고기펙, 풋고추, 양파, 깐 마늘, 당근, 귤상자, 세제 등 설 연휴기간에 사용할 식자재 그리고 기타 가정용품을 가득체운 한 여인, 카운터 점원이 하나하나 코드를 찍는 동안 두부 한 모를 빼들고 제자리로 가져갈듯 말듯 하더니 다시 계산대에 올린다.

그 뒤에 나도 카트에 가득체우고 계산을 기다리고 있다.

 

지난 1. 18일 결혼식을 치루고 곧바로 세이셀공화국으로 신혼여행을 갔다가 26일 돌아온 딸이 섣달그믐인 30일 시집으로 가기 전 29일 친정으로 온단다.

 

세이셀군도는 죽기 전에 가 봐야할 휴양의 천국으로 인구 3만인데 비해 거북이는 3만8천 마리란다.

115개의 섬나라, 15억 년 전의 원시림이 보존되어있고 영국 월리엄 왕자부부가 신혼여행을 갔었고,

세계적인 축구스타 베컴 부부의 결혼 10주년 여행지이며

미 오바마 대통령이 대선 전 휴양지로 이용했던 곳이란다.

둘째가 갔다와서는 언제 우리 가족 다 같이 가자고 한다.

 

딸들을 키울 때 평소에 엄마는 입버릇처럼 하던 말 “넵둬 지인생 지가 알아서 하지”

아침에 늦잠을 잘 때도 저녁에 늦게 귀가할 때도 나는 걱정 되어

“졔 일어나야지, 아니 지금 몇 신데 아직 안 들어와 전화 해봐” 할 때마다 하던 소리고,

시집가서 애기 낳아도 힘들어 못 봐준다던 엄마다.

 

그런 엄마가 지난해 4월 큰딸이 애기를 낳아 5월부터 월요일이면 우리 집으로 애기를 데리고 왔다가 금요일 저녁이면 데리고 간다. 그러니까 주말을 제외하고는 애기랑 같이 친정에 와 있다. 엄마는 애기 목욕을 시킬 때면 아예 같이 벗고 애기를 안은 체 목욕을 시킨다. 언제 그런 말을 했느냐는 듯 힘들다고 하면서도 잘 돌봐주고 있다.

 

큰 딸이든 작은 딸이든 둘 다 학교 다니고 직장 다니고 가사는 거의 한 적이 없다.

평소에 엄마가 시키면서 가르치면 좋겠는데 하고 혼자 생각했었다.

출장을 갔다 오면 으레 대청소를 내가하곤 했다. 딸의 방을 청소할 때마다 늘 여자의 방이 좀 너덜하다는 걸 느끼곤 했다.

 

29일 저녁 무렵 둘째 부부가 도착했다.

오자마자 대뜸 “여행 갔다 와서 밥 몇 번 해먹었어?” 내가 물었다.

“한번도…….” 딸과 사위가 동시에 대답한다.

“내 그럴 줄 알았지 그럼 컵라면 먹었냐?”

신혼여행 갔다 온 뒷날인 27일 가전 장비 들어오고 28일 가스레인지 들여놓고 했으니 밥을 지어 먹을 수가 없었을 것이다.

 

그날 저녁 무렵 첫째 사위가 퇴근하면서 바로 우리 집으로 왔다.

사위 둘 다 키도 크고 잘 생겼다. 둘째는 키가 185로 거구다. 집안이 꽉차는 느낌이다.

이렇게 다 같이 산다면?

모두 우리 집에서 하룻밤을 묵고 30일 아침 두 식구 모두 본가로 떠났다.

 

부모는 늙어서도 자식을 위한 일이라면 사죽을 못쓰는 모양이다.

이제 우리 부부 둘만 남았다.

허전하다. 아주 허전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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